前生에 팔던 막대향(香) 제품명을 정확히 맞춘 아이
前生을 기억한다는 아이들 (5) - “아버지가 돌아왔네요”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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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카 이시와라는 1972년 스리랑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란성 쌍둥이인데 두 명 모두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 사례다. 우선 인디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인디카는 세 살쯤 됐을 무렵부터 전생 이야기를 했다. 그는 그의 고향에서 약 50km 덜어진 발라피티야라는 곳에 살았었다며 당시 부모의 이야기를 했다. 부모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지만 이들을 암발란고다의 어머니와 아버지라고 불렀다. 암발란고다는 발라피티야 인근에 있는 큰 마을이다. 그는 자신이 큰 학교를 다녔고 기차를 타고 이동했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아기 마하타야’라고 불렸다고 했다. 마하타야는 스리랑카 신할라족이 쓰는 언어로 ‘주인’, 혹은 ‘보스’라는 뜻이다. 그는 말칸티라는 이름의 누나가 있었고 함께 자전거를 타곤 했다고 했다. 프레마시리라는 이름의 삼촌이 있었는데 그를 ‘무다라리 바파’라고 불렀다. 무다라리는 꽤 큰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을 뜻하며 바파는 친가쪽 삼촌을 뜻한다. 그는 그의 집이 송아지와 강아지를 키웠고 자동차 한 대와 트럭 한 대가 집에 있었다고 했다.


인디카는 누나와 함께 사원(寺院)을 찾은 적이 있었고 부처 형상 앞에 빨간색 커튼이 걸려 있었다고 했다. 전에 살던 집에서 결혼식이 열린 적이 있었다고도 했고, 집에 전기(電氣)가 들어왔다고도 했다. 그가 인디카로 살던 집에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는 전생의 어머니가 지금의 어머니보다 피부가 더 짙었고 키가 컸으며 뚱뚱했다고 했다. 4학년까지 학교를 다녔었으며 세파리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인디카의 현재 가족은 암발란고다에 사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의 친구 한 명이 과거 암발란고다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 인디카가 말하는 가족이 누구인지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이 친구는 얼마 후 인디카가 말하는 것과 비슷한 가족을 찾아냈다. 이 가족의 장남 이름은 다르샤나인데 10세 때 뇌염으로 숨졌다고 한다. 인디카가 태어나기 4년 전이었다.


아버지의 친구는 다르샤나의 어머니와 인디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다르샤나의 아버지는 집에 없었는데 나중에 인디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 현재 인디카가 살고 있는 곳으로 연락 없이 찾아왔다. 인디카가 네 살쯤 됐을 때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당시 가족들은 인디카가 자신의 전생 아버지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버지를 보고서는 현생의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돌아왔네요”라고 했다고 한다.


숨진 다르샤나의 가족들은 얼마 후 인디카의 집을 두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인디카는 이들 중 여러 명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짐 터커 박사는 그러나 이들이 통제되지 않은 상황, 즉 여러 명이 함께 모인 곳에서 만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누군가를 알아보는 것을 실험할 때는 보다 통제된 환경에서 한 명 한 명씩 만나 파악을 하는데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사례를 연구한 이언 스티븐슨 버지니아대학교 박사는 스리랑카에서 활동하는 동료 갓윈 사마라라트네에게 부탁해 이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했다. 사마라라트네는 인디카와 함께 발라피티야와 암발란고다에 찾아가 봤는데 인디카가 무언가를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했다. 사마라라트네는 다르샤나의 가족 중 아직 인디카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내 제대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삼촌과 사촌 한 명씩을 찾아서 인디카에게 보여줬는데 그는 이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또 한 번 과거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이때 인디카는 집 밖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고 했다. 다르샤나라는 이름과 1965라는 숫자가 적힌 곳을 찾아낸 뒤 이를 사마라라트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벽에 쓰인 글이었는데 다르샤나가 직접 썼던 것으로 추정됐다. 다르샤나의 가족 모두 이런 글이 벽에 적혀 있었던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사마라라트네는 다르샤나의 가족들을 인터뷰하며 인디카가 말한 것들과 일치하는 것들을 확인해봤다. 확인 결과 인디카가 말한 거의 모든 것들이 다르샤나의 삶과 일치했다. 다르샤나의 가족은 발라피티야에 살았고 그는 암발란고다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다르샤나는 ‘아기 마하타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누이의 이름은 말칸티였고 함께 자전거를 타곤 했다. 프레마시리라는 친가쪽 삼촌이 있었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다르샤나의 가족은 자동차 한 대와 강아지 한 마리를 갖고 있었다. 트럭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가족이 사는 부지에 세워져 있던 트럭이 있었다고 한다. 송아지를 키우지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소를 몰고 와 이들 집에서 방목을 하곤 했다고 한다.


인디카의 가족이 다니던 사원은 부처 형상 앞에 하얀색 커튼이 걸려 있었다. 다르샤나의 가족이 다니던 곳은 인디카가 말한 대로 빨간색 커튼이 걸려 있었다. 다르냐사가 집에서 치러진 결혼식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그가 죽기 몇 주 전 이웃집에서 결혼식이 열렸었다고 한다. 다르샤나는 이 결혼식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었는데 이때 뇌를 다친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고 했다. 다르샤나는 4학년까지 다녔고 5학년에 들어가고부터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짐 터커 박사는 약 50km 떨어진 곳에 있는 평범한 아이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인디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또한 인디카는 한 살쯤 됐을 때 코막힘 및 비염 등의 증상을 보이는 비용종(鼻茸腫)을 앓았다고 한다. 터커 박사는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나서 이 병이 생기는 것은 흔하지만 신생아일 때 이에 걸리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인디카의 일란성 쌍둥이 형제는 이에 안 걸렸었다고 한다.


터커 박사는 다르샤나가 죽기 전 코에 호스를 끼고 산소를 공급받았었는데 이와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추측했다. 터커 박사에 따르면 스티븐슨 박사가 연구한 사례 중 비용종이 신체적 특징으로 대물림(?)된 사례는 없다고 한다.


한편 인디카의 쌍둥이 형제 카크샤파파도 전생을 기억한다고 했는데 인디카보다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는 경찰 총에 맞고 사망했다고 했다. 부모는 그가 말한 이야기를 종합해본 뒤 아이가 1971년 스리랑카 봉기(蜂起) 당시 반란군인 것으로 파악했다. 부모는 그냥 웃어넘겼고 아이는 더 이상 과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쌍둥이 형제는 자라며 다른 성격을 보여줬다고 한다. 자신이 과거에 평범한 학생이었다던 인디카는 점잖고 쉽게 흥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반면 반란군이었다는 카크샤파파는 폭력적이었다. 인디카는 똑똑하고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으나 카크샤파파는 반대였다고 한다. 부모는 이들의 성격 차이가 나이가 들며 서서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터커 박사는 물론 쌍둥이들의 경우 다른 성격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르게 태어날 수도 있지만 자연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가 이런 차이를 태어날 때부터 보이는 것은 드물다고 했다.


터커 박사는 아이들의 성격 차이가 나이가 들며 줄어들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만약 과거의 삶에서 현재의 삶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 맞다고 한다면, 과거의 기억이 점점 사라지게 됨에 따라 성격도 바뀌게 된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터커 박사는 아이슬란드에 있는 아이슬란드대학교 심리학 교수 엘렌더 하랄드손이라는 인물이 조사한 사례 하나도 소개했다.


스리랑카에 있는 푸니마 에카나야케라는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가슴 왼쪽과 갈비뼈 아래쪽에 옅은 모반(母斑)을 갖고 태어났다. 푸니마는 세 살이 되기 얼마 전부터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부모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TV를 보는데 켈라니야 사원이 나오고 있었다. 푸니마가 사는 곳으로부터 약 200km 떨어진 유명한 사원이었는데 푸니마는 이 사원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학교 교장이던 아버지는 학생들을 데리고 켈라니야 사원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푸니마를 데리고 갔다. 푸니마는 사원을 둘러보더니 저 강가 건너편에서 살았었다고 말했다.


푸니마가 전생에 대해 증언한 것은 여섯 살이 됐을 때를 기준으로 약 20개에 달했다. 자신이 과거에 남성이었고 큰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고 했다. 막대 향(香)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했다면서, 제품의 이름은 암비가와 게타 피차차라고 했다. 아버지는 이들 제품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들이 사는 마을에 이런 제품의 향이 판매되는지를 확인해봤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푸니마가 살던 마을 학교에 새로 부임한 교사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주말에는 부인이 살고 있는 켈라니야 사원 인근 마을에서 지냈었다. 푸니마의 아버지는 이 교사에게 딸의 이야기를 해줬고 이 교사는 푸니마가 말하는 사람이 켈라니야 사원 인근 마을에 있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이 교사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는 처남(妻男)과 함게 푸니마가 말한 마을을 찾아가봤다. 한 주민에게 막대 향을 파는 곳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세 곳이 있다는 답을 들었다. 이 중 한 가게의 주인은 암비가와 게타 피차차라는 제품을 팔고 있다고 했다. 처남이자 동료였던 지나다사 파레라가 자전거에 막대 향을 싣고 시장으로 가던 중 버스에 치여 숨졌다고 했다. 푸니마가 태어나기 2년 전이었다고 한다.


푸니마의 가족은 얼마 후 이 가게를 찾아갔다. 이때 푸니마는 전생의 가족 이야기들을 많이 했는데 사실과 일치하는 것들이 많았다.


하랄드손 박사는 푸니마가 9세가 됐을 때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푸니마가 전생의 가족을 찾기 전에 말했던 20개의 증언에만 집중했다. 푸니마는 지나다사의 어미니와 부인, 그리고 자신이 다니던 학교의 이름을 말했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 중 14개가 일치했으며 3개는 불확실하다고 했다.


하랄드손 박사는 지나다사의 부검 결과 보고서를 확인해보기도 했다. 왼쪽 갈비뼈가 골절되고 비장이 파열됐으며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하복부까지 여러 찰과상을 입었다. 푸니마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모반의 위치와 일치했다.


터커 박사는 이 사례는 평범한 방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200km 넘게 떨어져 살던 가족이었고 전혀 알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푸니마가 지나다사의 사망을 만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고 했다. 터커 박사는 우연일 가능성도 적다고 했다. 막대 향의 제품명을 정확히 맞추는 우연은 없다는 것이다.


전생을 기억한다는 아이들의 사례들 중에는 부모나 주변인에 의해 정보를 듣고 이를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터커 박사는 그러나 이 사례는 ‘교사’라는 독립적인 주체가 두 가족 사이에서 중개자로 활동한 사례라고 했다. 부모가 주입한 걸 아이가 자신의 기억으로 착각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례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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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7, 00: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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