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한 아이가 1년 후 120km 떨어진 곳에서 환생하다?
前生을 기억하는 아이들(45) - 우연이라기엔 사소한 기억을 너무 많이 떠올려낸 사례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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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심리학자 하랄드손 박사가 조사한 스리랑카의 사례 중 주목할 만한 사례가 네 개가 있다. 그중 첫 번째 사례는 딜루크시 니산카라는 소녀의 이야기다.


하랄드손 박사는 딜루크시의 이야기를 스리랑카의 유력 일간지인 ‘선(Sun)’이 발행하는 주말판에 실린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됐다. 딜루크시는 외동딸이었으며 두 살이 되기 전부터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 스리랑카 중부의 담불라라는 지역에서 살았다며 냇가에서 익사(溺死)했다고 했다. 딜루크시는 부모에게 어머니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과거에 살던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조르곤 했다. 딜루크시는 1984년 10월 4일에 태어났고 하랄드손 박사는 그의 어머니를 1989년 11월에 인터뷰했다.


딜루크시의 부모는 아이가 전생을 떠올려내면 혼을 내곤 했다.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계속 아이를 타일렀으나 효과는 없었다. 부모는 아이가 다섯 살이 됐을 무렵에는 아이를 타이르는 것마저 포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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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km 떨어진 담불라 마을에 살다 익사했었다는 소녀 딜루크시. 출처: 《나는 빛을 봤고 이곳으로 오게 됐다(I Saw A Light And Came Here)》

 

부모는 친척을 통해 인근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불교 수도원장인 수만갈라 스님에게 연락을 했다. 이 스님은 아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보내달라고 했다. 이 스님은 이런 자료를 갖고 아이가 전생에 살았다고 한 담불라 지역 일대를 찾아봤으나 일치하는 인물을 찾지는 못했다.


수만갈라 스님은 친한 기자에게 이 사례를 소개하며 조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기자는 딜루크시의 부모를 인터뷰한 뒤 이를 ‘위켄드(Weekend)’라는 언론매체에 영문과 신할라語 기사로 게재했다.


담불라에 거주하던 다마다사 라나툰가라는 사람은 이 기사를 보고 딜루크시의 아버지와 수만갈라 스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다마다사는 딜루크시가 말하는 전생 대상자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이엇다. 다마다사와 딜루크시의 아버지는 얼마 후 직접 만났고 이들 가족을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수만갈라 스님과 함께 담불라 지역으로 초청했다.


당시 동행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딜루크시는 담불라 마을 초입부터 약 6km 되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다마다사의 집을 선두에 서서 사람들을 따라오게 했다고 한다. 다마다사는 딜루크시가 집 인근 지형과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가 과거에 했던 말들을 검증해본 결과 그가 그의 딸 시로미의 환생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딜루크시가 살던 베얀고다 마을에서 시로미가 살았던 담불라 마을까지의 거리는 약 120km이다. 담불라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었고 딜루크시의 부모는 그곳에 사는 지인이 아무도 없었다. 담불라 지역을 방문했던 것은 1984년 당시 한 번뿐이었다고 했다.


하랄드손 박사는 딜루크시의 주장이 본격적인 검증에 앞서 세 개의 문서로 정리돼 있었다고 했다. 딜루크시의 부모가 인근 스님에게 보낸 편지, 기자가 인터뷰 과정에서 정리한 메모, 그리고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시로미의 아버지가 딜루크시의 아버지와 수만갈라 스님에게 보낸 편지 역시 유용했다고 했다. 시로미의 아버지는 당시 편지에서 딸이 아홉 살의 나이였던 1983년 9월 27일 익사해 숨지게 되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었다고 한다.


딜루크시는 전생의 어머니가 “담불라에 있는 페라와테에 살았다”고도 했고 “담불라 인근에 살았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한 첫 번째 검증에 나선 수만갈라 스님은 담불라 인근에 페라와테라는 마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사례를 취재한 기자는 페라와테라는 이름이 지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바라는 열매를 뜻하는 ‘페라’와 정원이라는 뜻의 ‘와테’가 합쳐진 단어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로 딜루크시는 현생의 어머니에게 과거 살던 집에서는 여러 과일 열매가 나는 나무들이 있었다고 말했었다. 이는 시로미가 살던 집 인근의 지형과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시로미의 이모인 위말라는 2년간 시로미의 가족과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다. 위말라는 시로미보다 아홉 살이 더 많았고 같은 학교를 다녔었다고 한다. 이 둘은 매우 친하게 지냈고 거의 항상 함께 시간을 보냈다.


위말라는 하랄드손 박사에게 시로미는 고바 열매가 나올 때가 되면 항상 이 정원이 있는 곳을 지나서 걷자고 했다고 한다. 지명으로 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바 열매 나무가 많은 정원이라는 뜻으로 이 길을 ‘페라와테’라고 불렀다고 했다.


하랄드손 박사는 딜루크시의 증언 중 이와 같이 어린이들이 하는 표현으로 된 것들이 꽤 있었다고 했다. 딜루크시는 전생의 아버지가 ‘도담와테’라는 지역에서 채석장을 운영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이는 오렌지를 뜻하는 도담과 정원을 뜻하는 와테의 합성어였다. 실제로 시로미의 아버지는 오렌지가 많이 자라는 지역 인근에 있는 타일 공장에서 근무했었다.


딜루크시는 “남자형제와 나는 냇가에 빠지게 됐고 나는 이곳으로 오게(죽게) 됐다”고 했다. 시로미는 집 인근에 있던 얕은 냇가에 빠져 익사했었다고 한다. 당시 위말라를 비롯한 다른 아이 대여섯 명이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한다.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위말라는 시로미가 사라진 것을 눈치챘고 그를 찾아 나섰지만 몇 시간 뒤 냇가 끝자락에서 그의 시체가 발견됐다고 한다. 


시로미는 수영을 할 줄 알았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시로미가 발을 헛디뎠고 머리 등을 어딘가에 부딪쳐 의식을 잃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시로미의 머리에서는 부상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딜루크시는 “집 인근에 힌콜라 부티크점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음식을 사곤 했었다”며 “길을 돌아서면 작은 야채가게가 있는데 삐쩍 마른 남자아이가 그곳에 살았다”고도 했다. 확인 결과 시로미가 살던 집에서 학교를 향하는 방향으로 걸어 나가면 작은 가게가 있었다. 이 가게는 하랄드손 박사 연구팀이 이 지역을 방문하기 5개월 전에 사업이 잘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의 남자형제는 하랄드손 박사에게 그의 남동생은 말랐다는 뜻을 의미하는 ‘힌’과 남동생을 뜻하는 ‘말레’, 즉 ‘힌말레’로 불렸다고 했다. 그는 시로미가 그를 어린 남자아이로 봤기 때문에 ‘말레’가 아니라 어린 소년을 뜻하는 ‘콜라’로 불렀을 수 있다고 했다. 즉, ‘힌콜라’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 가게에서 사용하던 영업허가증을 확인했다. 확인 결과 각종 식료품과 야채를 판매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곳이었다. 시로미가 학교를 통학하는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가게는 이곳이 유일했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는 몇 년 뒤인 1990년 ‘한말레’라고 불린 남성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7세였고 몸은 여전히 말랐었다고 한다. 그는 시로미가 물건을 사러 가게에 왔었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딜루크시는 “작은 담불라 바위 위에 올라가면 살던 집의 지붕이 보였다”고도 했다. 시로미가 살던 집에서 약 30m 떨어진 곳에는 높이 1m가 채 안 되는 낮고 평평한 바위가 하나 있었다. 시로미의 어머니와 이모 위말라는 아이가 이 바위 위에서 남동생과 함께 자주 놀았었다고 했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 바위를 직접 찾아가 조사를 했는데 시로미가 살던 집의 지붕이 나무 사이로 보였다. 집 근처에 있는 유일한 바위가 이것이었다고도 했다.


돌과 인형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했다는 이야기, 남동생과 함께 돌 위에 올라가다 떨어진 이야기 등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시로미는 딜루크시가 태어나기 1년 1주 전에 숨졌다. 하랄드손 박사는 딜루크시가 여러 주장을 했는데 이들 중에는 사실로 확인되는 내용도 있지만 검증이 불가능한 내용도 있었다고 했다. 또한 소꿉놀이를 했다는 이야기, 돌 위를 오르다 미끄러졌다는 이야기, 인형을 갖고 놀았다는 이야기 등은 여느 아이들이나 경험해봤을 이야기라 신빙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랄드손 박사는 총 17개의 주장을 검토한 결과 12개는 시로미의 삶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하지만 남동생의 피부가 매우 짙었다는 이야기나 그가 떠올려낸 그의 과거 애칭과 어머니의 이름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딜루크시의 사례는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한 제작사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디스커버리채널을 통해 2003년 방영됐다. 아시아와 독일 등에서도 이 프로그램이 방영됐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는 2006년에 딜루크시를 다시 한 번 만났다. 전생의 기억 일부는 갖고 있었지만 대다수는 잊어버리게 됐다고 한다. 딜루크시는 전생의 가족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선물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학교를 마치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나 스리랑카의 경제상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의 장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고 한다.


계속해서 다른 스리랑카 사례들 중 아이의 증언이 기록된 상태에서 검증 절차가 이뤄진 사례들을 소개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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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0, 23: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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