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일 때 공격받고 헬기로 구조됐으나 병원에서 죽었다”
前生을 기억하는 아이들(47) - ‘호수에 살던 거북이’, ‘초가집 가게’, ‘타일로 된 집’ 등 구체적 내용을 떠올려낸 아이…前生 가족과 기자, 전문가의 증언과 취재로 확인.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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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하랄드손 박사가 조사한 사례 중 소개할 마지막은 차투라 부디카 카루나라트네라는 소년의 이야기다.


차투라는 스리랑카 중부의 시골 지역인 쿠루나갈라에서 1989년 4월 20일에 태어났다. 그는 세 살쯤 됐을 때부터 전생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숲 속을 지나고 있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그를 향해 총을 쐈다고 했다. 그는 전생에 자신이 군인이었다고 했다. 그는 목에 총을 맞았고 얼굴이 피로 뒤덮였다고 했다. 헬리콥터 한 대가 그를 구조해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고 했다.


차투라는 그가 과거에 살던 집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람말라라는 곳에 살았고 타일로 만들어진 지붕이 있는 집이었다고 했다. 인근에는 초가지붕으로 된 오두막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곳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했다고 했다. 그가 살던 집은 핑크색으로 칠해져 있었다고 했다. 또한 집 근처에는 호수가 있었고 그곳에 거북이들이 살았다고 했다. 말을 따라 할 줄 아는 앵무새도 키웠었다고 했다.


차투라의 이야기는 스리랑카 현지 신문인 ‘디바이나(Divina)’라는 곳에 소개됐다. 마틴이라는 남성은 이 기사를 읽고 차투라라는 아이가 말하는 인물이 혹시 자신의 아들인 다야난다가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다야난다는 육군에 입대했다가 1986년 4월 숨졌다. 그는 폭탄 공격으로 부상을 당했고 헬리콥터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살아나지 못했다.

 

다야난다의 가족은 나람말라 마을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 살았고 집은 타일로 뒤덮인 지붕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근처에는 아버지 마틴이 소유한 오두막집이 있었는데 아들 다야난다로 하여금 그곳에서 각종 식료품을 팔도록 해줬다. 다야난다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생활했었다고 한다. 마틴은 실제로 집 근처에 작은 호수가 있었고 거북이들이 살았던 것도 일치한다고 했다.


마틴은 차투라의 가족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는 그가 살던 마을의 이장(里長)과 함께 차투라가 사는 마을로 갔다. 이들은 차투라가 사는 마을의 이장과 만나 셋이서 함께 차투라의 집을 찾았다. 마틴과 그의 부인은 차투라의 가족을 만나본 뒤 이 아이가 죽은 아들 다야난다의 환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신문사 디바이나의 기자인 난다세나는 마틴의 가족이 차투라를 만났다는 사실을 전해듣고는 후속 취재에 나섰다. 그는 세 살 반 된 차투라를 데리고 다야난다의 부모가 사는 집을 데리고 갔다. 그는 기사를 통해, 차투라가 다야난다의 부모(?)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아들로 인정받았다고 보도했다. 다야난다의 어머니는 아들이 입던 오래된 옷들을 차투라에게 꺼내보이기도 했다. 차투라는 다야난다의 어머니가 보여준 옷들이 죄다 긴팔 옷이라며 짜증을 냈고 누군가가 자신의 옷을 뺏어 입은 것 같다며 찢겨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다야난다의 어머니는 차투라에게 그가 과거에 살던 곳이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차투라는 지금 있는 집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며 다른 집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차투라는 다야난다의 부모가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다야난다의 부모는 최근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과거 살던 집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이었다. 부모는 차투라를 데리고 전에 살던 집으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걸어가는 중 한 할머니가 아이에게 다가와서는, 자신이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의 할머니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할머니가 맞았다고 한다. 다야난다는 부모보다 할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랐었다고 한다.

 

차투라는 그가 살던 집에 들어가고 나서는, “이제는 집에 전기가 들어오네!”라고 말했다. 다야난다가 살았을 때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었다고 한다. 차투라는 벽에 걸려 있는 저울을 하나 보고서는, “저거 예전에 무게를 잴 때 사용했던 것 아니냐”며 “아직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차투라는 그 가게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하지만 가게가 있던 오두막은 이미 철거된 후였다. 차투라는 이런 상황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군중 속에서 다야난다의 친구 한 명을 알아보기도 했다.


당시 차투라의 방문에 동행했던 기자들은 다야난다의 아버지에게 아이가 말한 헬리콥터와 동네에 있던 트랙터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앞서 다야난다는 헬리콥터에 실려 병원으로 갔었다고 했고 집에 트랙터가 한 대 있었다고 했다. 다야난다의 아버지는 아들이 트랙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고 했다. 집에 트랙터만 한 대 있으면 농사를 훨씬 더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야난다는 '육군은 반군(叛軍)으로부터 트랙터들을 압수해 이를 경매로 판매한다'며 이를 통해 사면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 경매가 열릴 때 직접 찾아가 트랙터를 사오겠다고 했으나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1992년 11월에 차투라의 가족을 직접 만나봤다. 차투라의 어머니는 아이가 한 첫 번째 전생 이야기는 총에 대한 것이었다고 했다. 두 군데에 총을 맞았고 헬기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것이었다. 차투라가 전생에 대한 지명이나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나람말라라는 지역 한 개뿐이었다. 이곳은 그의 전생의 가족이 산 곳이었다. 그는 현생의 어머니를 앞에 두고서는, “나람말라에 있는 내 엄마는 당신 같이 마르지 않고 뚱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차투라는 헬기 소리만 들으면 겁에 질렸다. 그는 아이들이 갖고 노는 공만 봐도 두려워했다. 공이 폭탄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는 군용 트럭과 텐트, 군인들에 관심이 많았다. 라디오에서 군대와 관련된 노래가 나오면 이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는 1992년 11월 다야난다의 아버지인 마틴과도 만났다. 이 무렵 마틴은 언론보도를 통해 나온 차투라의 이야기가 자신의 아들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일, 즉 환생이라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아버지 마틴에 따르면 다야난다는 태어난 후부터 계속 부모와 함께 살다 1985년에 군대에 입대했다. 그는 학교를 마친 뒤 한 2년간 석공(石工)하으로 근무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이에 따라 마틴은 초가지붕으로 된 작은 가게를 하나 만들어 아들로 하여금 운영할 수 있도록 해줬다. 다야난다는 이곳에서 식료품과 간식거리를 팔며 1년간을 지냈다. 그는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아 육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다야난다의 부모는 아들이 입대한 8개월 뒤 그가 큰 부상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모는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다야난다는 얼마 후 숨졌다. 다야난다는 폭탄 공격을 받은 이후부터 의식이 없었고 부모를 만나서도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하랄드손 박사는 다야난다가 살던 집을 조사하며 차투라의 주장 중 일부가 사실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타일로 된 지붕이 있는 집에 살았다는 점, 아버지와 함께 수영을 하러 가던 호수가 집 근처에 있었다는 점 등이 확인됐다. 이 호수는 집에서 15분 떨어져 있었으며 여전히 거북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다야난다의 부모는 현재 초가집에서 살고 있었으나 과거에는 타일 지붕으로 된 집으로 살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전에 살던 집과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으며 호수와의 거리도 큰 차이는 없었다. 다야난다의 부모가 과거 타일로 된 집에 살았다는 사실은 인근에 거주하던 친척들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하랄드손 박사는 다야난다가 죽게 된 경위에 대한 육군 측 보고서도 입수했다. 다야난다는 1986년 4월 15일, 14명으로 구성된 소대원들과 함계 두 대의 군용트럭을 타고 정찰을 하고 있었다. 트럭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뢰를 밟게 됐다. 폭발이 일어났고 차량은 바로 뒤집힌 뒤 크게 부서졌다. 몇 명의 군인들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나머지는 크게 다쳤다. 다야난다는 헬기를 타고 이송됐으나 4월 18일 병원에서 숨지게 됐다.


앞서 말했듯 차투라는 전생에 총에 맞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며 그의 목과 왼쪽 귀 뒤에 있는 모반(母斑)을 가리켰다. 다야만다의 부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얼굴과 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붕대는 왼쪽 귀를 덮고 있었다고 한다. 장례식 사진에서 확인한 다야난다의 시체를 보면 그의 머리와 목, 그리고 왼쪽 귀가 붕대로 감싸져 있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를 보면 다야난다가 해당 부위에 큰 부상을 당했다는 점을 추측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 사례는 기억과 신체적 특징이 동반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차투라가 떠올린 기억의 경우는 부모의 증언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언론보도 등을 통해 각기 기록돼 있었다고 했다. 이런 기록을 갖고 전생 대상자에 대한 추적에 나선 것인데 이는 부모의 기억만을 의존한 것보다 더욱 신빙성이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차투라는 사람들이 그에게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물으면 과거에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계속 첨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는 그가 특정 답변을 내놓아야만 한다는 압박을 받았던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결국 차투라의 이야기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그가 처음에 말한 내용들이 사실과 일치하는 비율은 71%에 달했지만 그가 두 번째, 세 번째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들이 일치하는 비율은 50% 내외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는 그럼에도 아이의 증언 중 구체적인 내용이 일치하는 것이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나람말라라는 지역에 살았다는 점, 타일 지붕으로 된 집에 살았다는 점, 근처에 오두막집이 있었고 이를 가게로 사용했다는 점, 근처에 거북이가 사는 호수가 있다는 점, 군인일 당시 목에 부상을 입어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는 점 등이 특히 그렇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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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6, 02: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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