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부인을 만난 뒤 미소를 짓는 7세 소년
前生을 기억하는 아이들(39) - 아이슬란드 심리학자의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추적기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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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아이슬란드에 있는 아이슬란드대학교 심리학 교수 엘렌더 하랄드손이 조사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하랄드손 교수는 약 20년간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의 사례 약 100건을 조사했다. 그 역시도 이 분야의 선구자인 버지니아대학교의 이언 스티븐슨 박사와 함께 연구를 하다 독립적인 연구에 나선 경우다. 하랄드손 교수는 스리랑카와 레바논의 사례에 특히 집중했다.


그는 다른 전생 연구가보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연구도 진행했다. 단순히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주장이 사실과 맞는지 추적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았다.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과, 이런 기억이 없는 평범한 아이들 사이의 심리적 차이를 분석하는 연구를 했다. 또한 그가 연구했던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다시 한 번 만나 여러 심리상태 조사 및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소개했던 미국의 전생 연구가 캐롤 바우먼은 상담사의 입장에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와 이런 아이를 가진 부모의 관계 개선에 초점을 둔 경우다. 직접 아이를 조사한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이런 아이를 가진 부모의 증언에 의존했다고 볼 수 있다. 일부 회의론자들은 부모가 아이에게 특정 생각을 주입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의 증언만으로는 아이가 실제 자신의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들은 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착각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주장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캐롤 바우먼의 사례를 보면 누군가가 주입해 특정 기억을 떠올리거나 특정 행동을 한다고 하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부터는 하랄드손 심리학교수가 직접 아이를 만나 검증한 사례들을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쓴 책 《나는 빛을 봤고 이곳으로 오게 됐다(I Saw A Light And Came Here)》에 담긴 사례 중 레바논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먼저 소개한다. 


1982년 7월의 어느 날 밤. 무장한 세 명이 이슬람 시아파 분파인 드루즈파의 회관(會館)을 공격했고 게이트를 지키던 두 명을 죽였다. 이중 사망한 인물 중 한 명은 푸아드 아사드 카다기라는 인물로 해당 종교시설을 관리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드루즈파의 영적(靈的) 지도자인 셰이크 알 아클을 근거리에서 경호하던 인물이었다.


이로부터 9년 후 베이루트에서 조금 떨어진 한 마을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나지라는 남자아이는 한 살 반쯤 됐을 때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가 할 법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어서 부모를 놀라게 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나는 작지 않고 크다”고 하더니, “권총을 두 정 들고 있고 수류탄은 네 개를 갖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수류탄을 보고 놀라지 말라”며 “나는 수류탄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무기를 많이 갖고 있다”며 “자식들이 아직 어린데 보러 가고 싶다”고도 했다.


나지는 그가 죽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무장한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고 나도 이들을 향해 총을 쏴 한 명을 사살했다”고 했다. “우리는 총에 맞았고 결국 구급차에 실려 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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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드루즈파 영적 지도자의 경호원이었다는 소년 나지. 출처: 《나는 빛을 봤고 이곳으로 오게 됐다(I Saw A Light And Came Here)》

 

나지는 계속해서 어머니에게 특이한 말을 했다. “내 와이프가 당신보다 아름답다”며 “그녀의 눈과 입이 훨씬 더 예쁘다”고 했다. 나지의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아이가 혹시 전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처음 생각했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는 나지에게는 여섯 명의 누나가 있었는데 그가 이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지는 네 살쯤 됐을 무렵 길거리에서 한 젊은 여성을 보고서는 “전(前) 부인과 닮았다”고 했다고 한다. 아이는 근처 가게에서 일을 하던 이 여성을 좋아하게 됐고 나이가 훨씬 많은 그녀에게 다가가 결혼을 해달라고 청혼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지는 과거에 살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도 했다. 사람들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아버지를 그가 과거에 살던 집으로 데리고 가, 집에 있는 무기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하고 한쪽 손이 불편한 친구 한 명이 있었다고 했다. 이 친구는 손 하나만을 가지고도 총을 제대로 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나지는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벙어리 친구’라고 불렀다.


나지는 과거에 살던 집을 정확하게 떠올려내지는 못했으나 계속해서 부모에게 이전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데려가주지 않으면 내 발로 알아서 걸어가겠다”는 일종의 협박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특이한 이야기만을 한 것이 아니라 행동 면에서도 평범한 아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담뱃갑을 보면 담배를 꺼내 이를 피우려고 했다. 누군가가 양주를 마시고 있으면 다가가 자신도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나지의 부모는 아이가 전생의 기억이 한창 떠오르는 것으로 보일 때 이런 행동을 많이 보였다고 했다. 앞으로 소개하겠지만 나지는 전생의 가족을 찾게 되는데 이들 가족과 만난 뒤부터는 전생의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졌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가 나지를 처음 만난 건 그가 여덟 살이 됐을 때인 2000년 5월이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나지가 말랐으며 잘생긴 아이였다고 했다. 그를 방문한 연구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에 따르면 나지는 더 이상 전생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지 않게 됐다. 관련 질문이 나와야만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런 현상은 대여섯 살쯤부터 전생의 기억을 더 이상 떠올려내지 않게 되는 다른 아이들의 특성과도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대여섯 살 정도 됐을 때부터는 과거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뜻이다.


나지의 아버지 사비르 알다나프는 하랄드손 박사에게 자신이 아이의 어머니보다 아이의 전생 이야기를 더욱 관심있게 들어줬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이가 과거의 가족으로 떠나게 될까 걱정했다는 것이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어머니의 이런 걱정은, 전생을 기억하는 것으로 보이는 아이의 부모가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지금까지 내가 소개한 사례와는 조금 다른 점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다수의 사례들은 아이의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훨씬 더 아이의 전생을 고민한 사례였다. 앞서 소개한 사례의 아버지들은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서인지, 혹은 환생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서인지 아이가 하는 전생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경우다.


나지는 어느 날 그가 살고 있던 마을로부터 17km 떨어진 카버차문 마을에 과거 살던 집이 있다며 이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아이는 두 살 반쯤 됐을 때 과거 살던 집 인근 지도를 그리기도 했다. 하랄드손은 나지의 아버지와 누나들을 인터뷰한 결과 나지가 이들 모두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나지의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카버차문 마을로 향하기로 했다. 카버차문 마을로 진입하는 교차로에서 차는 잠시 멈췄었다. 여섯 갈래의 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왼쪽을 가리키며 다음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이 길로 직진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 자신의 집이 나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집 밖에서 계단 청소를 하는 남성 한 명이 보였다. 흘러내리는 물 때문에 언덕길을 차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 사비르는 언덕 밑에 차를 세우고 아들 나지와 함께 언덕길을 올라갔다.


사비르는 계단 청소를 하고 있는 남성에게 다가가 주변에 살던 사람 중에 전쟁통에 죽거나 순교(殉敎)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남성은 인근에 순교한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사비르는 이 남성이 알려준 집을 찾아갔다. 나지가 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숨진 것인지를 물었으나 그 집에 살던 사람은 폭탄 공격으로 숨졌다. 나지가 말한 사망원인과는 다른 것이었다.


나지는 계속 자신이 과거에 살던 집을 찾는 듯 동네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계곡 반대편으로 데리고 가달라”고 했다. “하얀색 건물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며 “우리 집에서 이 건물이 보였다”고 했다. 사비르와 나지는 다시 차가 세워져 있는 곳을 향해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차에 머물고 있던 나지의 어머니와 누이들은 근처에서 세차를 하고 있는 남성 한 명을 발견했다. 세차를 하고 있던 사람은 카말 카다기라는 남성이었는데, 그는 당시의 만남을 이렇게 묘사했다.


<집 앞에서 세차를 하고 있었습니다. 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옆집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어린 남자아이가 차에서 뛰쳐나오더군요. 한 남성(나지의 아버지)은 차를 세워두고 아이를 쫓아갔습니다. 차에 있던 여성들은 저를 보고서는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을 아느냐는 것이었죠. 이들은 숨진 사람의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그가 권총과 수류탄을 들고 다녔고 빨간색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카말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 여성들이 하는 이야기가 몇 년 전에 숨진 자신의 아버지 푸아드 카다기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카말은 나지의 어머니에게 나지가 몇 살쯤 됐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나지가 일곱 살이라고 답했다. 어머니는 나지가 떠올려낸 다른 이야기들도 계속해서 했다. 카말은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들렸다고 했다. 카말은 집 근처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던 어머니를 불렀다. 이 무렵 사비르와 나지도 언덕길을 내려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과 합류하게 됐다.


카말의 어머니이자 죽은 파우드의 부인인 나즈디야 카다기는 하랄드손 박사에게 나지를 처음 만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원에서 올리브를 따고 있을 때 나지가 처음 이쪽을 향해 다가왔습니다. 제 자녀들이 제게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소년이 와있다고 했습니다. 이 아이가 저를 알아보는지 확인해보자며 저를 불렀던 거죠. 저는 나지의 어머니에게 다가가 남편이 전쟁 중에 숨졌다고 말해줬습니다. 나지는 저를 원래 알던 사람처럼 쳐다봤습니다.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군요. 제 아들 카말이 나지에게 “이 여성이 네 전 부인이냐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나지는 그냥 웃기만 했습니다.>


계속해서 나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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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2, 00: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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