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승려였다는 스리랑카 아이들
前生을 기억하는 아이들(41) - 배우지 않은 언어로 된 불교경전을 읊다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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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아이슬란드의 심리학자 하랄드손 박사가 연구한 스리랑카의 사례 중 본인이 전생에 승려였다고 주장하는 아이들 세 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두 명은 불교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한 명은 가톨릭 가족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전생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내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 면에서도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모두 두세 살쯤 됐을 무렵부터 불교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불교 승려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도 했다. 이들 중 두 명은 수도승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우선 스리랑카에 대해 알아야 할 점 중 하나는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불교 신자라는 점이다. 힌두교를 믿는 인구가 16%, 이슬람교를 믿는 인구가 8%, 그리고 기독교인이 7%이다. 버지니아대학교의 이언 스티븐슨 박사도 스리랑카에서 오랜 시간 조사를 했다. 하랄드손 박사와 스티븐슨 박사는 불교 신자뿐만 아닌 모든 종교 그룹에서 환생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람들을 스리랑카에서 찾아냈다. 불교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인간이 죽어도 그 업(業)에 따라 생사를 거듭한다는 개념의 ‘윤회(輪廻) 사상’을 믿는다. 이로 인해 본인의 아이가 환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부모가 불교를 믿지 않는 다른 지역보다 많을 수는 있다고 생각된다.


하랄드손 박사는 스리랑카의 불교의 경우 아이들이 8세에서 10세가 됐을 때부터 수도승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다만 티베트의 불교와는 차이점이 있다고 했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태국의 불교와는 달리 전생에 승려였다고 주장하는 아이들을 일부러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랄드손 박사는 ‘달라이 라마’라는 지위가 아이의 전생 여부에 따라 승계되는 티베트 문화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려 이런 부연 설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랄드손 박사는 스리랑카에서 약 200건의 환생 사례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는데 지금 소개하는 세 명만이 전생에 자신이 승려였다고 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물론 전체 모집단이 너무 적어 통계적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불교를 세게 믿는 문화권에서조차 승려였던 자신이 환생했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비율이 낮다는 점을 추측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소계하는 사례는 두민다 라트나야케라는 남자아이의 이야기다. 그는 1984년 6월 16일 스리랑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캔디에서 약 25km 떨어진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스리랑카의 신할라족(族)으로 불교를 믿는 집안이었다. 그는 약 세 살 때부터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캔디에 있는 아스기리야 사원의 승려 지도자였다는 것이었다.


하랄드손 박사의 연구팀은 이 사례를 1988년 9월부터 조사했다. 아이의 어머니와 조부모 등 핵심 증언자들을 인터뷰했다. 이들 모두 아이가 과거 아스기리야 사원에서 생활했고 빨간색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다른 승려들을 교육시켰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개인 소유의 코끼리 한 마리가 있었고 사원 내에 보관하고 있던 돈가방이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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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과거 승려였다고 주장하는 아이 두민다가 부채를 들고 있다. 출처: 《나는 빛을 봤고 이곳으로 오게 됐다(I Saw A Light And Came Here)》

 

아이는 과거 가슴에 갑작스러운 고통이 생겨 바닥에 넘어진 뒤 병원으로 이송돼 숨졌다고 말했다 한다. 아이는 소승경전(小乘經典)에 등장하는 인도 팔리어로 된 문구를 자주 인용하곤 했다고 한다. 이는 고대 언어로 현대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언어였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를 언급하며 아이가 과거에 배운 적이 없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제노글로시’ 사례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아이는 전생 대상자를 찾기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이름을 떠올려내지는 못했다. 다만 약 2년에 걸쳐 전생에 대한 삶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두민다는 또래 아이와는 다른 행동을 하기도 했다. 승려처럼 옷을 입고 싶어 했고 본인을 ‘동자승(童子僧)’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집 근처에 있는 사원을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찾아가 기도를 했다. 꽃을 구해 사원에 갖다 놓기도 했다. 또한 청결을 매우 중요시했다. 다른 아이와는 놀려고 하지도 않았다.


두민다의 어머니는 집 인근 절에 살던 지노라사 스님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다. 이 스님은 두민다를 직접 인터뷰했으나 아이는 부끄러워서인지 대답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스님이 갖고 있던 부채 하나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부채를 갖고서는 머리 앞에 갖다 대더니 한 불교 경전 구절을 읊더란 것이었다.

 

아이는 점차 스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본인이 과거에 아스기리야 사원에서 생활했다고 하더니 사원과 그의 자동차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두민다는 절에 갈 때마다 곧장 승탑(僧塔)을 향해 가서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는 지노라사 스님을 만나 아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 스님은 부모가 가르친다고 해서 아이가 이런 행동을 보일 수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이 스님은 두민다의 어머니에게 아이를 직접 아스기리야 사원에 데려가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한다.

 

1987년 10월, 두민다는 어머니와 조부모와 함께 아스기리야 사원을 갔다. 스리랑카의 일간 영자지(英字紙) ‘아일랜드(Island)’의 기자가 이 사례를 전해 듣고서는 이들의 방문에 동행했었다. 어머니는 당시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고 훗날 회고했다. 아이가 부모를 떠나 수도승의 길을 걷게 될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1989년 11월, 하랄드손 박사의 연구팀은 두민다의 가족을 다시 방문했다. 아이는 다른 불교 종파의 지도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과거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는 새로운 증언을 내놨다. 아이는 최근 들어 어머니에게 어깨 위를 감싸는 가운을 입고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랄드손 박사는 1990년 6월에도 다시 한 차례 두민다의 가족을 찾았으나 새로운 진전 상황은 없었다고 했다. 두민다는 학교에 잘 적응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다른 형제와 비교해봤을 때 훨씬 더 차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고 했다.


하랄드손 박사는 두민다의 가족과 아스기리야 사원과는 어떤 관계도 없었다고 했다. 이들 가족은 아이가 이곳을 데리고 가달라고 하기 전까지 이곳을 가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아스기리야 사원이라는 장소 자체가 대화 주제로 나왔던 적도 없었다고 했다. 또한 친척 중에 승려인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이 사례를 최초 보도한 아일랜드 신문의 기자는 아이가 라타나팔라 스님의 환생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는 아스기리야 외곽 지역인 가라테라에서 1975년 심장마비로 숨진 인물이었다. 하랄드손 박사의 연구팀은 라타나팔라 스님과 알고 지낸 세 명의 승려를 만나봤는데 그가 개인 자동차나 코끼리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소득도 없었으며 돈가방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른 승려들을 교육하지도 않았고 부채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런 점을 고려, 두민다의 전생 대상자가 라타나팔라 스님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하랄드손 박사는 개인 소득이 있었던 승려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아이가 과거 교류했었다고 한 사원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 승려를 찾았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가 말한 사원의 승려 지도자가 자동차를 갖게 된 것은 1920년 이후의 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일반 승려들이 자동차를 가진 것은 1980년 이후의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돈가방 문제와도 시기가 겹쳤다. 최근 들어 승려들은 개인적으로 돈을 챙기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하랄드손 박사는 지도자 승려가 자동차를 보유하게 된 1920년부터 현재의 지도자가 취임하게 된 1975년 사이 아스기리야 인근의 있는 사원에서 활동했던 모든 승려 지도자들을 찾아봤다. 확인 결과 1921년부터 1929년까지 승려 지도자로 활동했던 구네파나 사라난카라라는 인물이 두민다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렇게 해서 이 사례는 해결됐다고 했다.


1990년 BBC 방송국은 환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는데 두민다의 사례가 소개됐었다. 방송국은 두민다에게 경전을 일부 읊어보라고 했고 했는데 인터뷰에 동석했던 스님들은 모두 경전에 있는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두민다는 21세가 됐을 때 수도승의 생활을 그만뒀다. 그는 수도승 생활을 하며 컴퓨터에 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했고 이후 보안카메라를 설치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이후 콜룸바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고 스리랑카의 주요 연구기관에서 컴퓨터공학자로 활동했다. 그는 결혼해 아이를 한 명 낳았다. 하랄드손 박사는 이후에도 두민다와 여러 차례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고 했다. 그는 젊은 세대의 음주를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자신이 전생에 승려였다고 하는 스리랑카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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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4, 04: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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