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을 예언한 삼촌…“(女 조카에게) 네 아들로 돌아올 거야”
前生을 기억한다는 아이들(15) - 본인이 최상층 브라만 계급이라며 집안 일을 하지 않던 아이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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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스티븐슨(1918-2007) 박사는 미국에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을 가장 심층적으로 연구한 학자로 꼽힌다. 그는 버지니아대학교 의대 정신과 과장 등을 지내며 전생을 기억한다는 아이들을 찾아 전세계를 누볐다. 그는 1967년에 버지니아대학교에 지각(知覺)연구소를 설립했고 이 연구소는 지금까지도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팀은 지난 60년간 25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연구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의 연구 결과를 담은 여러 책을 썼는데 가장 유명한 책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환생과 생물학(Reincarnation and Biology)》인데 총 분량이 2268쪽에 달한다. 이 책을 구할 수 없어 그가 일부 연구 내용을 추려 발표한 또 다른 책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환생이라는 질문(Children Who Remember Previous Lives-A Question of Reincarnation)》이라는 책을 구해 읽어보니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이 소개돼 있었다. 스티븐슨 박사가 이 책에서 소개한 14명의 사례를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사례 소개에 앞서 우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에 대해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은 환생을 믿는 힌두교와 불교 문화권 사람들만 전생을 기억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전세계적으로 환생을 믿는 문화가 많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러나 물론 서아시아권에서 전생을 기억한다는 아이들이 많았고 이들에 대한 연구를 오래 했다고 했다. 그는 이 책에 소개한 14명의 사례에 최대한 다양한 문화권을 포함시키려 했고 이를 위해 9개의 문화권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불교와 힌두교 문화권에 추가로 레바논, 영국, 핀란드, 터키, 그리고 미국의 사례를 담았다.


첫 번째로 소개할 사례는 1956년 4월 26일 인도 델리에서 태어난 고팔 굽타라는 소년의 이야기다. 그의 부모는 저소득층에서 중산층 사이의 생활을 하고 있었고 교육도 많이 받지 못했다고 한다.


고팔은 두 살에서 두 살 반쯤 됐을 때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고팔의 부모는 어느 날 손님 한 명을 초청한 적이 있었는데 이 손님이 사용한 유리컵을 치우라고 아이에게 지시했다. 그런데 아이가 “나는 샤르마이기 때문에 그걸 들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샤르마는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높은 성직자 계급인 브라만이 사용하는 성씨(姓氏)라고 한다. 고팔은 갑자기 성질을 내더니 유리컵 몇 개를 깨트리기도 했다.


고팔의 아버지는 아이를 앞에 세워두고 왜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했느냐고 꾸짖었다. 고팔은 자신이 델리에서 남쪽으로 160km 정도 떨어진 마투라라는 지역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팔은 마투라 지역에서 의약품을 다루는 회사를 운영했다고 했고 이 회사의 이름은 숙 샨차라크였다고 했다. 큰 집에 살며 여러 하인을 부렸으며 아내와 두 명의 남자형제가 있었다고 했다. 이들 중 한 명의 남자형제와 싸우는 일이 있었고 그가 쏜 총에 맞고 숨졌다고 했다.


고팔은 자신이 브라만 계급이었다고 말하더니 브라만은 자신보다 하위 계급의 사람이 만진 식기를 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생(生)의 고팔의 가족은 상인 계급인 바이샤였다.


고팔의 부모는 마투라 지역과는 어떤 관련도 없다고 했다. 고팔의 어머니는 아이가 계속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이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고팔의 아버지는 그래도 친구들에게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가 마투라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했다. 고팔이 하는 이야기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바로 마투라 지역으로 가 이 이야기를 확인해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1964년, 고팔의 아버지는 종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마투라를 갔다. 그때 고팔이 말한 숙 샨차라크라는 이름의 회사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회사에 찾아가 세일즈 담당자에게 고팔이 한 이야기를 했다. 이 매니저는 이 회사의 주인들 중 한 명이 몇 년 전 남자형제의 총에 맞고 숨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숨진 사람의 이름은 샥티팔 샤르마였고 숨진 날은 1948년 5월 27일이라고 했다.


이 매니저는 샤르마 가족에게 고팔의 아버지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샤르마 가족 중 몇 명은 델리로 찾아와 고팔을 만났다고 한다.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눠본 뒤 고팔을 마투라로 초대하기도 했다. 고팔은 마투라 지역에서 샥티팔 샤르마라는 사람이 알던 사람과 장소 등을 일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샤르마 가족은 고팔이 샥티팔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떠올려내는 것을 보고 더더욱 환생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고팔은 샥티팔 샤르마가 부인에게 돈을 꿔 회사를 공동운영하는 남자형제에게 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남자형제가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해 돈을 준 뒤 상황을 개선해보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인이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남자형제는 화가 났고 샥티팔을 총으로 쏴 죽였다고 했다. 이 살인사건은 당시 지역 언론에 소개가 됐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이를 아는 사람들은 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고팔은 전생에 대해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한 브라만 계급의 행동을 하기도 했다. 현생(現生)의 상인 계급에서는 부적절한 행동을 하더란 것이다. 그는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계급이 더 높다고 말했으며 하인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집안 일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사용한 컵에 담긴 우유는 절대 마시지 않았다고도 한다.


이언 스티븐슨 박사와 함께 전생을 연구한 자무나 프라사드 박사는 오랫동안 인도에서 활동했다. 프라사드 박사는 고팔의 이야기를 1965년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1969년부터 이 사례를 넘겨받아 직접 조사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두 가족 여러 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고 1974년까지 이 문제를 연구했다.


고팔은 1965년에 마투라를 방문한 뒤로는 다시 그 지역에 가고 싶다는 뜻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1965년 이후 고팔은 델리에 살던 샥티팔 샤르마의 두 여자형제를 종종 방문했다고 한다. 몇 년 동안 이런 만남을 이어오다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게 됐다고 한다.


고팔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브라만 계급의 우월의식을 잃게 됐고 상인 계급의 삶에 적응하게 됐다고 한다. 전생의 이야기도 점점 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 사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고팔의 사례는 강력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샥티팔 샤르마라는 사람의 삶과 죽음을 고팔이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샥티팔 샤르마라는 사람이 마투라에 있는 영향력 있는 가문의 사람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죽음은 당시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샤르마와 고팔 굽타의 가족은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고 다른 카스트 계급의 가족이었다.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부류가 전혀 다른 가족들이었다. 아이가 전생을 기억한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 서로의 가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사례는 한 남성이 죽기 전 가족에게 자신은 환생할 것이라고 말하고 실제로 환생한 것처럼 보였다는 이야기다. 미국 알래스카주에 거주하는 틀링기트족의 장로(長老) 빅터 빈센트는 여자 조카 아이린 초트킨에게 자신이 죽고 나면 아이린의 아들로 환생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빅터는 코와 등 위쪽에 있는 상처 두 개를 보여줬고, 이런 상처가 있는 아이로 환생할 것이기 때문에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빅터 빈센트는 1946년 봄에 사망했다. 약 18개월 후인 1947년 12월 15일, 아이린 초트킨은 아들을 낳았다. 아들 아버지의 이름을 따 콜리스 초트킨 주니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모반(母斑)을 갖고 있었는데 삼촌 빅터 빈센트가 보여줬던 상처의 위치와 일치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1962년에 이 모반을 직접 확인했는데 아이린은 태어났을 때 있었던 위치에서 조금 옆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길이 약 3cm, 너비가 약 5mm의 모반이었고 다른 피부색보다 짙었다고 했다. 수술 후 생긴 상처가 아문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어머니 아이린은 콜리스가 13개월쯤 됐을 때 이름을 말하는 것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이때 콜리스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느냐”라며 “나는 카코디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카코디는 빅터 빈센트가 부족들 사이에서 불리던 이름이었다고 한다. 아이린은 콜리스가 이런 이야기를 한 뒤 이를 이모 한 명에게 알려줬다. 이 이모는 콜리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 빅터 빈센트가 초트킨 가족으로 살기 위해 돌아오고 있다는 내용의 꿈을 꿨었다고 말했다. 아이린은 이 이모에게 과거 빅터 빈센트가 환생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었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콜리스는 두세 살쯤 되고나서부터 빅터 빈센트가 알던 여러 사람을 알아보는 것처럼 행동했다. 콜리스는 어머니 아이린에게 빅터 빈센트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콜리스는 빅터 빈센트와 비슷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빅터처럼 머리를 빗었고 두 명 모두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두 명 모두 배에 관심이 많았고 물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둘 다 종교에 관심이 많았고 왼손잡이였다.


콜리스는 엔진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고치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 아이린은 콜리스가 혼자서 배의 엔진을 켜는 법을 터득했다고도 했다. 콜리스의 아버지는 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를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콜리스는 아홉 살쯤 되고나서부터는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1962년에 그를 찾아갔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더란 것이다. 스티븐슨 박사는 콜리스의 가족을 1960년대에 세 번, 그리고 1972년에 한 번 더 만났다고 했다. 1972년 당시 콜리스는 말을 더듬는 버릇을 거의 다 고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흥분하면 여전히 더듬는 것 같다고 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지만 엔진에 대한 관심은 계속 있었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콜리스는 포병으로 참전했고 당시 그의 근처에서 터진 폭탄으로 인해 청력이 손상됐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가 콜리스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는 집 근처 펄프 공장에서 일을 하며 건강하게 생활했다고 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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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8, 05: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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