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샷건을 맞았다는 아이들, 같은 위치에 생긴 흉터와 장애
前生을 기억한다는 아이들(23) - 환생을 주장하는 동기(動機)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생의 가족들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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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인도와 터키에서 일어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생의 대상자가 모두 ‘샷건’에 맞아 숨졌는데, 총상의 위치와 똑같은 곳에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일종의 모반(母斑), 상처, 혹은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하누만트 삭세나라는 남자아이는 1955년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주(州)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 파우다르와 가인다 와티는 매우 가난했다. 어머니 가인다는 하누만트를 가졌을 때 어느 날 꿈을 꿨다고 했다. 같은 마을에 살다 최근 숨진 마하 람 싱이라는 남성이 꿈에 나타나더니 “내가 너에게 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누만트는 태어났을 때 가슴 아래쪽에 모반을 갖고 태어났다. 일반 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으며 모양도 불규칙적이었다. 아이의 부모는 마하 람 싱이라는 남성이 하누만트가 태어나기 1년 전 샷건에 맞아 숨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마하 람 싱은 가슴에 총을 맞았었다고 한다. 하누만트의 어머니 가인다는 마하 람 싱이 살해된 이후 그의 시체가 어떻게 됐는지 구경하러 간 마을 주민 중 한 명이었다.


이들 부모는 꿈에서 들은 이야기, 그리고 가슴에 있는 아이의 모반을 보고나서는 그가 마하 람 싱의 환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마하 람은 이들 가족으로부터 약 250m 떨어진 곳에 살던 이웃이었다. 서로 친분이 있던 사이었다. 마하 람은 땅을 보유하고 있었고 직접 농사를 짓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어느 날 저녁 총을 맞고 숨졌는데 범인은 체포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용의자도 특정하지 못했었다. 버지니아대학교의 이언 스티븐슨 박사는 자체적 조사를 해본 결과 이 범인이 마하 람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잘못 살해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하누만트는 약 한 살쯤 됐을 때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고 세 살쯤 됐을 때부터는 그가 마하 람의 삶을 기억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이 마하 람이라고 말하며 가슴에 있는 얼룩진 모반을 가리키며 이쪽에 총을 맞았었다고 했다. 마하 람의 삶에 대한 다른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그의 부인과 집, 송아지들을 떠올려냈다고 한다.


하누만트는 마하 람의 이야기를 하며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을 사용했다고 한다. 마하 람의 부인을 만난 자리에서는, “그녀가 내 아내다”라고 했다. 하누만트는 마하 람이 살던 집에 자주 놀러갔었고 마하 람의 어머니에게 특히 친밀감을 느꼈다. 마하 람의 어머니는 하누만트가 자신의 아들의 환생인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마하 람의 아들 한 명 역시 하누만트가 아버지의 환생인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아들 한 명은 동의하지 않았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 아들은 우선 하누만트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며 이 모든 것은 사기극이라고 했다. 마하 람의 부인 역시 버지니아대학교 연구팀의 조사에 협조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마하 람의 부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의 조사팀은 이 마을에서 촌장(村長)을 지낸 한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 사람은 하누만트의 이야기가 사실인 것 같다고 증언했다. 하누만트가 전생의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떠올려내기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모반과 마하 람의 총상을 연결지으며 환생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 사례를 1964년에 처음 접했고 1971년부터 1972년 사이 직접 조사를 했다고 했다. 이 무렵 하누만트는 16세가 돼 있었고 전생에 대한 기억을 다 잊었을 때였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 사례가, 그가 전생 이야기를 검증하며 전생 대상자의 부검 결과를 확인한 거의 첫 번째 사례였다고 했다. 가슴 아래쪽에 샷건을 맞았는데 아이의 모반 위치와 일치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마하 람의 아들 중 하누만트의 주장을 믿지 않는 남성의 이야기에도 주목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런 거짓말을 할 동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하 람의 가족은 집도 있고 땅도 있었으나 하누만트의 아버지는 땅이 없는 일반 노동자였다. 이에 따라 마하 람의 아들 한 명은 하누만트의 가족이 본인들의 땅을 일부 가지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하누만트의 부모가 실제로 마하 람의 가족에게 이런 요구를 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적 계급이 다른 두 가족 사이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이와 같은 의심이 생기는 경우는 간혹 있다고 설명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 사례 역시 검증에 실패한 사례라고 했다. 그는 우선 하누만트의 모반이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생긴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임신했을 때 산모(産母)가 무언가를 계속 반복해 생각하면 이에 상응하는 모반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스티븐슨 박사는 또한 이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하누만트의 어머니 가인다가 직접 마하 람의 사체를 확인하러 갔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때 가슴에 난 큰 상처를 봤을 것이고 당시 본 이미지를 임신 상태에서 떠올려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회의론자들은 이 사례를 보고 부모가 단순히 아이에게 마하 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주입시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역시도 이 사건에 대한 검증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세미 투투스무스라는 남자아이는 터키 남부 하타이주(州)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알리는 마을에서 작은 가게 하나를 운영했었다. 어머니 카란필은 아이를 낳기 이틀 전 얼굴이 피범벅이 된 남성이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다. 이 남성은 자신의 이름이 셀림 페슬리라며 귀에 총을 맞았다고 했다. 그는 카란필에게 함께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카란필은 셀림이라는 남성을 과거에 만난 적이 없었다. 다만, 셀림이라는 남성이 몇 달 전 샷건을 맞고 숨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세미는 오른쪽 귀가 완전히 펴지지 않고 접혀져 있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왼쪽 귀는 완전히 정상이었다.


셀림 페슬리라는 남성은 세미가 살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 살던 남성이었다. 그는 밭일을 하다 잠시 드러누워 쉬던 중 총에 맞아 숨졌다. 그의 이웃이었던 이사 더베클리는 당시 토끼 사냥 중이었는데 셀림을 토끼로 착각해 샷건을 쐈다. 셀림은 오른쪽 귀에 총을 맞았다고 한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며칠 후 뇌출혈로 사망했다.


세미의 부모는 꿈에 나타난 셀림과, 그의 총상 위치와 일치하는 곳에 있는 아들 세미의 장애를 보고서는 아이가 셀림의 환생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세미는 한 살 반 정도 됐을 때 말을 하기 시작하며 자신이 셀림 페슬리인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이미 환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던 부모는 아이가 이렇게 말했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고 했다.


세미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한 거의 첫 번째 말은 총을 쐈던 이사 더베클리라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이후 세미는 셀림 페슬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셀림의 부인 이름은 물론이고 여섯 명의 자녀 이름 모두를 맞췄다고 한다. 정확하게 이사 더베클리라는 사람이 쏜 총에 맞았다고도 했다.


어머니 카란필은 셀림을 알지 못했지만 아버지 알리는 그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가 떠올리는 이야기 중 아버지 알리가 셀림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내용이 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세미는 네 살이 채 안됐을 때 혼자서 셀림이 살던 마을에 찾아갔다고 한다. 그가 살던 마을에서 약 2km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셀림의 집에 찾아가 자신을 셀림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셀림의 가족 중 여러 명을 알아봤고 이름을 맞추기도 했다.


세미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혼자서 셀림의 집을 방문했다.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고 혼자서 떠나버려 혼쭐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세미는 부모에게 혼날 때면, “내가 살던 마을로 돌아가 버릴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미는 셀림의 가족이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그에게도 의견을 물어볼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 실망했다고 한다. 특히 셀림의 아들 한 명의 결혼식에 그를 초대하지 않아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세미는 셀림의 또 다른 아들의 약혼식과 결혼식을 위해 그의 현생 부모에게 돈을 받아 이를 전달했다고 한다.


세미는 셀림의 부인인 카티베가 다른 남성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하자 이에 분노하기도 했다. 그는 부인이 살던 마을로 찾아가 이 남성에게 뻔뻔하다며 소리를 쳤다고 한다. 부인 카티베에게는 어떻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고 한다. 카티베는 몇 년 후 결국 숨졌는데 세미는 크게 슬퍼했다고 한다.


세미는 셀림을 죽인 이사 더베클리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이사는 살해 목적이 아닌 사고였다고 자신을 변호했고 징역 2년형을 받았다. 그는 형기를 마친 뒤 다시 그가 살던 마을로 돌아와 노점에서 술을 파는 일을 했다. 세미는 그를 찾아가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고 그를 길거리에서 만나면 돌을 집어던졌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 사례를 1966년에 처음 접하게 됐고 1977년까지 이 사건과 관계된 열댓 명을 인터뷰했다고 했다. 셀림 페슬리의 부검 보고서를 확인해 총상의 위치와 장애가 있는 아이의 귀의 위치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가 조사를 하던 시기 세미는 계속해서 이사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고 했다.


세미는 16세부터 18세 사이 터키 육군에서 의무복무 기간을 채웠다. 군대에서 그는 귀 성형수술을 받았고 오른쪽 귀는 다시 정상적으로 펴졌다. 세미의 머리 모양도 이 무렵 바뀌게 됐는데 머리를 길러 오른쪽 귀를 덮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1977년에 세미를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했다. 군 복무 등을 통해 성숙해지고 성형수술로 귀가 멀쩡해져서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세미는 더 이상 이사에 대한 복수심을 갖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셀림의 삶에 대한 기억은 다 갖고 있지만 꼭 복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란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 사례를 소개하며 아이가 자신이 셀림이라는 인물로 살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에 주목했다. 부모가 특정 이야기를 주입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은 어렵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세미가 갖고 태어난 귀의 장애는 2만~3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한다고 한다. 또한 세미는 귀에만 문제를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른쪽 얼굴이 다 발달장애 증상을 보였다고 했다.


지금부터는 또 다른 전생 전문가인 캐롤 바우먼 상담사가 다룬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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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7, 01: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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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메아리     2022-02-17 오전 11:03
金永男회원님 이젠 그만하세요 제가 기독교인이라서 그런건 아니고 이 지구촌에 사는 한 같은 인간으로서 유튜브에 올린글도 많이 보앗읍니다 너무그러시면 우리속담에 재미난 구멍에 독사나온다고 햇어요 지난번에 유투브에도 님의글에 한마디 햇읍니다만 정말 이젠그만하세요 오로지 김영남씨만 이글을 올리데요 이젠그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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