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숨진 前 남자친구라는 세 살배기 아들
前生을 기억한다는 아이들(22) - “내가 너의 그림을 다시 그려줄게”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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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미국 시골 마을에 거주하던 두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남서부 텍사스주에 거주하던 캐서린 라이트라는 여성은 1978년 9월 버지니아대학교 이언 스티븐슨 박사에게 연락을 했다. 세 살 된 아들이 있는데 전생을 떠올려내는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이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혼란스러운데 그가 전생에 자신, 즉 어머니의 前 남자친구였다고 하더란 것이었다. 캐서린은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 월터 밀러라는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고 한다.


캐서린 라이트는 환생이라는 문제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 환생은 물론, 여러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사람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런 배경을 설명하며 독자들이 캐서린의 주장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믿음을 아들에게 주입해 전생을 떠올려내고 있는 것처럼 조작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러나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캐서린의 이야기를 다 들어본 결과 신뢰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례를 그의 책에 소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티븐슨 박사는 캐서린의 가족을 인터뷰하기 위해 직접 텍사스로 갔었다. 가보니 캐서린과 그의 어머니는 환생을 믿는 일종의 모임을 구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반면 캐서린의 남편은 환생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한 캐서린은 남편에게 아들이 전생을 떠올려내고 있는데 자신의 전 남자친구였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가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을 알았다고 했다. 캐서린과 결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 남자친구인 월터가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캐서린은 그럼에도 스티븐슨 박사가 방문하기 얼마 전 남편에게 아들 마이클이 떠올려내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남편은 그리 놀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우선 이미 숨진 캐서린의 전 남자친구 월터 밀러에 대해 소개하자면 그는 1967년 여름 18세의 나이였을 때 숨졌다. 그는 인기가 많은 고등학생이었고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월터와 캐서린은 3년 전부터 알게 돼 교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식 약혼을 얼마 앞두고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당시 월터는 헨리 설리번이라는 친구와 파티에 참석했었다. 당시 헨리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파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를 몰다 잠에 들었다고 한다. 길가에서 추락하는 사고였는데 월터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헨리는 살아남았다.


캐서린은 남자친구 월터의 죽음을 한동안 슬퍼했지만 사고 이듬해인 1968년 프레더릭 라이트라는 남성과 결혼을 했다. 둘은 딸아이를 한 명 낳았고 얼마 후 아들 마이클을 낳았다.


캐서린은 월터가 죽은 약 1년 뒤 그를 꿈에서 만났다고 했다. 월터는 “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죽지 않았고 돌아올 것”이라며 “너의 그림을 다시 그려줄게”라고 했다는 것이다. 캐서린은 이런 꿈을 꾼 뒤 월터가 누군가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꿈을 꿨을 당시 임신을 하고 있던 월터의 여자형제 캐롤 밀러 데이비스의 자식으로 월터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마이클은 태어난 뒤 평범하게 자랐다고 한다. 태어난 얼마 후에는 숨을 쉬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런 증세는 사라지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세 살쯤 됐을 무렵부터 특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는 알 수 없어야 할 사람이나 사건을 떠올려내는 것이었다.


마이클은 어느 날 어머니를 쳐다보더니 ‘캐롤 밀러’라고 말했다고 한다. 캐서린은 월터가 죽은 후에도 그의 여자형제인 캐롤 밀러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마이클도 캐롤을 두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캐롤은 10년 전에 결혼을 했고 ‘밀러’라는 성이 아닌 남편의 성인 ‘데이비스’를 썼다고 한다. 즉, 마이클은 ‘캐롤 밀러’의 이름이 아닌 ‘캐롤 데이비스’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음에도 결혼하기 전의 이름인 ‘캐롤 밀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마이클은 어머니 캐서린에게 월터 밀러가 사고를 당했을 당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친구 한 명과 함께 차에 있었는데 차가 갓길에서 떨어져 내려갔다”며 “차 문이 열렸고 나는 튕겨나가 죽게 됐다”고 했다고 한다.


마이클은 당시 차의 유리가 깨졌었다고도 했고 사고를 당한 이후 다리 위로 이송(移送)됐었다고 말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 친구와 함께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었다고도 했다. 마이클은 월터 밀러가 사고가 일어난 날 파티에 참석했던 동네의 이름도 말했었다고 한다.


캐서린은 아들이 하는 이야기가 실제 월터 밀러의 사건 당시 기록과 일치한다고 했다. 캐서린은 당시 사고를 다룬 신문 기사를 스티븐슨 박사에게 보여줬는데 사고 자동차의 모습이 마이클의 주장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월터는 차에서 튕겨나간 뒤 목뼈가 부러져 바로 숨졌다. 당시 구급차 한 대가 그를 싣고 다리 위를 지나간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구급차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즉, 전생의 대상자가 숨진 이후의 기억을 떠올려냈다는 것인데 이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했다. 종교적으로 환생을 믿는 미얀마나 태국과 같은 곳에서는 이런 주장이 종종 나오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환생을 믿지 않던 캐서린은 당시 사고 생존자인 헨리에게 연락을 해 사고 전 휴게소를 들렀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캐서린은 스티븐슨 박사에게도 헨리를 찾아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들은 텍사스주의 작은 시골마을에 살았는데 아이가 환생을 했는지를 확인하려는 부모와 의사가 있다는 소문이 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어머니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마이클은 월터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도 하곤 했다. 월터의 집과 헨리의 집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그리고 헨리의 성씨가 무엇인지를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또한 헨리의 별명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스티븐슨 박사와 동료 에밀리 켈리 박사는 캐서린의 어머니, 그리고 캐서린의 남편 등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캐서린의 어머니는 마이클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다만 캐서린의 남편은 아들이 전생에 대해 어떤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마이클의 아버지가 아들의 전생 이야기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마이클이 어머니에게만 이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알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 사례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발생하는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사례들과 겹치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그의 책에 소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사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들이 하는 이야기에 대한 어머니의 너무나도 큰 확신이라고 했다. 또한 ‘환생을 믿는 가족’이라는 구설수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헨리를 찾아간다는 식의 자체 검증을 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아쉬움이라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럼에도 이 사례의 신뢰성을 뒷받침할 강력한 증언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우선 캐서린의 가족으로 태어난 아들이 사실은 어머니의 전 남자친구라는 식의 ‘삼각관계’를 만들어내야 할 동기가 부족하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물론, 캐서린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 남편을 고통스럽게 하려 했을 수도 있고 아들 마이클이 이런 판타지를 통해 부모 모두를 고통스럽게 하려 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이 사례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 사례를 함께 조사한 동료 에밀리 켈리 박사는 스티븐슨 박사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 캐서린이 과거에 사랑했던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주입시켰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소개하는 사례는 마이클처럼 구체적인 내용을 떠올린 것은 아니지만 아이에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한 사례로, 전생을 기억하는 것으로 의심해볼 수 있는 사례다.


미국 중부 인디애나주의 작은 마을에 거주하던 마릴린 잭슨이라는 여성은 1980년 이언 스티븐슨 박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1969년에 태어난 딸 에린 잭슨이 세 살쯤부터 전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마릴린과 여러 차례 편지를 교환한 뒤 그해 여름 인디애나주를 직접 방문해 이들 가족을 만났다.


마릴린이 스티븐슨 박사에게 연락을 했을 무렵은 이미 에린이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을 때였다. 에린은 한 네 살쯤 됐을 때부터 전생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전생 이야기를 한 것이 1년 남짓이라는 것인데 스티븐슨 박사는 다른 사례보다 전생을 떠올리는 기간이 짧은 사례라고 했다.


에린은 세 살쯤 됐을 때 “나는 남자아이였다”며 “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했다. “존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을 때 나는 검정색 강아지 한 마리와 하얀색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다”고 했다. 에린은 전생에 새어머니가 있었는데 자신에게 잘 해줬다고 했으며 제임스라는 이름의 남자형제가 있었다고 했다. 제임스라는 남자형제는 검정색 옷을 특히나 좋아했는데 속옷마저도 검정색을 찾아 입곤 했다고 했다.


에린은 전생에 어디에서 살았는지, 그리고 어느 시대에 살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떠올려내지 못했다. 다만, 각종 전광판과 광고 사인, 전봇대 등으로 지저분해진 미국의 고속도로가 너무 싫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잃게 됐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에린은 “말들이 돌아다닐 때가 훨씬 더 좋았다”며 “자동차들은 끔직하다. 다 망쳐버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고속도로의 현대화가 이뤄지기 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1930년 이전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에린은 본인이 남자아이라며 계속 남자 옷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수영을 배울 때였는데 어머니 마릴린은 위아래 두 벌로 나눠진 여자아이 수영복을 사줬다고 한다. 아이는 그런데 수영복 하의만 입고 상의는 입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체형으로 된 수영복을 다시 사줬다고 한다.


에린은 어머니가 여자아이 드레스를 입히려고 하면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에린은 오히려 청바지나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싶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가 에린을 만났을 때 그는 열 살이 됐을 때였다. 그때도 에린은 드레스 입는 것을 싫어했고 1년에 드레스를 입는 날이 사흘도 안 된다고 했다. 드레스를 꼭 입어야 하는 날에도 최소한 단조로운 드레스를 찾아 입었다고 했다. 레이스 모양이나 빛이 번쩍이는 드레스는 절대 입지 않았다고 한다. 머리도 항상 남자아이처럼 짧게 잘랐는데 기르게 된 것은 아홉 살이 된 이후부터였다.


에린은 사람 모양의 인형에 관심이 없었다. 이런 인형을 건네주면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겨 동물 인형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에린이 좋아한 실내 활동은 그림 그리기, 독서, 레고 등이었다. 야외 활동으로는 수영과 등산, 낚시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 에린은 야구가 배우고 싶다고 했고 보이스카우트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 남자아이가 아니라 보이스카우트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남자였으면 좋겠다. 왜 내가 남자면 안 되는 거지?”라고 했다고 한다.


에린은 어렸을 때부터 지적(知的)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 마릴린에 따르면 에린은 세 살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누구도 가르쳐주기 이전에 혼자서 터득했다. 미술 실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에린이 그린 그림들을 봤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뛰어난 실력이었다고 평가했다. 에린은 혼자서 시(詩)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시의 내용을 보면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쓴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에린은 네 살 이후부터 점점 전생에 대한 기억을 잊어갔고 기억이 사라짐에 따라 남성성도 조금씩 사라졌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그가 만난 에린은 평범한 소녀로 자라는 것 같았다고 했다.


에린의 부모는 개신교 신자로 모두 환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마릴린은 아이가 전생의 이야기로 보이는 말을 하자 환생이라는 개념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에린의 아버지는 여전히 환생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에린의 부모가 아이에게 고의적으로 전생의 기억을 주입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고 단정했다. 마릴린은 아이가 전생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 이를 무시하거나 웃어넘기지 않고 제대로 들어줬을 뿐만 아니라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강요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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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6, 04: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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