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西方보다 아시아·아프리카에 환생 사례가 많을까?
前生을 기억하는 아이들(55) -전생에 무슬림이었다는 힌두교도, 그 반대 사례도…믿음의 문제인가 유전자적 결함인가?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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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슨 박사가 연구한 다수의 사례들은 스리랑카와 태국, 인도, 레바논 등의 사례들이었다. 이들의 특징은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 시아파의 분파인 드루즈파 교인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일반 기독교인이나 이슬람교인보다 환생에 대한 믿음이 크다.


예를 들어 드루즈파 교인들이 모여 사는 레바논 마을에서는 전생을 기억한다는 아이들의 사례가 많이 보고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인근 마을에서는 이런 사례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인도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힌두교가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전생을 기억한다고 하는 아이가 많이 나오지만 이슬람계가 사는 곳에서는 사례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스티븐슨 박사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환생에 대한 열린 시각을 갖고 있는 문화권에서 더 많은 사례들이 보고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우선 환생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환생을 믿는 부모는 아이가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이를 진지하게 들어주겠지만 믿지 않는 부모는 아이가 허튼 소리를 한다며 무시할 것이라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서방세계보다 동남아시아나 서아시아,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더 많은 사례가 보고된다고 했다. 그는 이들 문화권과 서방 문화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서방세계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을 더 많이 기억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고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의 영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다. 죽은 사람들은 산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2. 서방세계 사람들보다 산 사람들을 더 많이 기억하기도 한다. 가족관계가 더욱 끈끈하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게 되면 이들은 환자가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더욱 가깝게 뭉친다. 하지만 서방세계는 해당 구성원을 가족이라는 무리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조현병과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으로부터 회복하는 비율이 현대화된 국가보다 후진국에서 훨씬 높다는 것이 놀랍지만은 않다고 할 것이다.
3. 이들 문화권에서는 서방세계에 있는 ‘운(運)’, ‘우연’과 같은 개념이 없다. 모든 일은 특정인이 잘해서건 잘못해서건 이를 일어나게 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특징은 질병을 치유할 때도 잘 나타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유를 하는 사람이나 무속인과 같은 사람들이 특정인의 질병이 그냥 운이 좋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라고 원인을 설명하면 이들을 찾는 환자를 빠르게 잃게 된다. 죄를 지었다거나 조상을 제대로 모시지 않았다거나, 혹은 다른 누군가의 질투 등으로 인해 병이 생긴 것이지 그냥 운이 좋지 않아 생긴 것이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4. 서방세계 사람들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크다. 서방세계에서는 텔레파시와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이들에게는 특이한 일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일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들은 꿈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며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꿈에서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5. 서방세계보다 말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이에 따라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더욱 잘 보존하는 것일 수 있다.
6. 이들의 시간은 서방세계와 다르게 흘러간다. 서방세계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문화권 사람들이 시간개념이 없는 것을 아주 짜증나는 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들은 시계에 따라 움직이는 서방사람들의 시간 엄수 정신을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7. 서방세계보다 언제든 무언가를 꼭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개념이 덜하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전생 등 머릿속에 있는 기억이 더 잘 보존되는 것일 수 있다.>


부모나 아이가 환생이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믿고 있는 지역에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의 사례가 더욱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슨 박사는 환생에 대한 믿음이 전생의 대상자에서 현생의 당사자로 이어지게 되는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환생에 대한 믿음이 생(生)을 반복할수록 강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는 머릿속에 떠오른 전생의 기억을 실제 전생의 기억인 것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환생에 대한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이 떠올려낸 기억이 전생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이를 모두 무시하는 성향이 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서방세계에 거주하는 연구 대상자들을 만나보면 이들이 어렸을 때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기억을 떠올려낸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현생의 삶과 시간대와 장소가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일이 또렷이 기억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이미지가 왜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을 그냥 무시해버린다고 했다. 그러다 나중에 커서 환생에 대한 책 등을 읽고 어렸을 때 떠올린 전생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 한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인도의 사례에서도 흥미로운 특징이 발견됐다고 했다. 인도 북부지역에서는 400건 이상의 사례가 보고됐지만 남부지역에서는 8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전체 인구수에서는 이와 같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데 보고된 사례의 수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고 했다. 


남부지역 주민들은 드라비다語를 사용하는 반면 북부지역 사람들은 산스크리트語를 사용한다. 하지만 두 지역의 종교는 같다. 남부지역 주민들이 북부지역 주민들보다 힌두교에 대한 신앙심이 다소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초창기에는 북부지역의 언론사가 더욱 더 발달돼 있기 때문에 남부지역보다 더 많은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가 확산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두 지역 언론의 격차는 줄어들었고 인도에서 보고되는 대다수의 사례들은 언론이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 보고되기 때문에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인도의 사례에서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무슬림인 사람이 무슬림이었던 전생을 기억한 사례, 무슬림인 사람이 전생에 힌두교도였다고 한 사례, 그리고 힌두교도였던 사람이 전생에 무슬림이었다고 한 사례가 모두 발견됐다는 것이다. 인도에 사는 무슬림은 이슬람 수니파 교인이 많다. 수니파는 환생을 믿지 않는 종파다. 스티븐슨 박사는 만약 믿음이라는 것이 환생한 사례가 나타나는 것과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면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환생 사례가 보고돼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가능성을 제기하고자 한다고도 했다.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을 보면 전생의 기억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거나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스티븐슨 박사는 이를 언급하며, 전생의 기억이 이런 아이들이 갖고 있는 하나의 장애, 혹은 결함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과 일반 아이들 사이에 유전자적 차이가 있고 이런 결함(?)으로 전생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는 레바논 사례를 들며, 드루즈파 교인들 사이에서는 많은 사례가 보고되고 인근에 사는 기독교인 사이에서는 거의 보고가 되지 않는 상황의 원인이 유전자적 차이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인도 북부지역과 남부지역 사이에서 보고된 사례 수의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이런 원인에 따른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일 중 최선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뿐”이라며 “나의 후임자들이 이들의 연관관계를 조사할 방법을 찾아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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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3, 04: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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